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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섭 : • NAUI 워크숍 디렉터 • USGTF(미국 골프지도자연맹) MASTER PRO & COURSE EXAMINER • 1970년대 서울 명동 다이빙샵/수입상 BIG DIVERS 대표 • 1982년 미국에서 NAUI 강사자격 취득 • 1985년 강사트레이터 자격 취득 후 강사양성 • 1997년~2008년 한국 NAUI KOREA 설립/장학관 자격 취득 한국 NAUI 발전 주도 • 2008년 USGTF(미국 골프티칭협회) 마스터프로/시험관 자격 취득 • 미국 내 USGTF 한국어 골프티칭 프로스쿨 담당관 • 명지대학교 사회개발원 스쿠버다이빙 지도자과정 교수

• KOREA NAUI Pro Platinum Center 대표, 코스디렉터를 양성하는 WD(워크샵 디렉터).

조회 수 : 9532
2011.05.11 (16:36:52)

온두라스 감옥에 방치된 ‘대한국민’ 한지수씨 [2009.11.06 제7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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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다이빙 강사 교육 중 살인 혐의 받고 라세비아 교도소에…
체포•재판 과정에서 무국적자나 다름없는 신세
▣ 임인택  

“전 왜 여기 있는 거죠? (중략) 2차 심리에서 살인죄가 적용되어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판사의 판결을 들었을 때는, 온몸이 떨리고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에 빠졌습니다. 울분에 휩싸였습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요.

 

(중략) 그동안 눈물은 충분히 흘렸다고 생각했지만 목까지 차오르는 뜨거움은 또다시 눈물이 될 태세입니다.

 

(중략) 몸이 부들부들 떨립니다. 입술을 지그시 물고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만한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는 것을 이제 다시 모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한지수씨가 수감 중인 라세이바 교도소의 최근 모습. 온두라스의 한 교민이 면회가 사진을 찍었다. 맨 위 왼쪽이 한지수씨가 머무는 2층 침대로 위 칸을 사용한다. 선풍기, 매트리스, 침구 등 모두 스스로 준비해야 한다. 아래 가운데 사진은 빨래터, 맨 아래 사진은 취사장이다. 사진을 찍은 교민은 “온두라스 국립공원 바로 밑에 교도소가 있어 계곡물을 받아 쓴다”고 전한다. 그러나 식기 등 주방 기구 역시 직접 준비해야 한다. 맨 오른쪽 사진은 부부방이다. 수감자의 배우자가 면회 왔을 때 이용한다. 이 교도소는 현재 수용 인원의 2배가 수감되어 있다고 현지인들이 전한다. “너무 열악하다”고 한씨가 말하자 교도소 관계자는 “돈이 있으면 따로 방을 하나 만들어도 된다”고 말했다 한다.

        

부탁받고 이웃 도움 청했을 뿐인데…
수감자 한지수. 26살. 악을 쓰고 통곡해도 이 땅에 전해질 리 없다. 편지의 ‘발신지’는 쿠데타 정부가 들어서 있는 불안정한 나라, 시차만 14시간이 되는 중남미 온두라스. 더 정확히는 라세이바 지역의 엘 포르베니르 교도소(이하 라세이바 교도소). 온라인이 아니었다면 그의 글은 감옥의 담장을 넘어, 온두라스 수도 테구시갈파와 멕시코를 거쳐 서울편 비행기를 타야만 당도한다.
지옥은 멀고, 그곳에서 보내는 ‘악몽의 한철’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10월30일로 한씨가 그곳에 수감된 지 딱 한 달이 됐다. 네덜란드 국적의 20대 여성 마리스카 마스트를 지난해 8월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인터폴 적색수배 명단에 올라 올 8월27일(현지시각) 이집트에서 붙잡혔으니 실상 두 달이 넘도록 영어(囹圄)의 몸이다.
그는 결백을 강력히 주장한다. 해서 그의 조국 대한민국을 ‘수신처’로 삼아 당당하게, 그러나 애절히 도움을 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두 달 동안 정부는 이미 여러 차례 기대에서 엇나갔다.
곱씹으면 억울함은 기어코 분노가 되고 한이 된다. 기억은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온두라스를 방문한 때다. 볕으로 가득한 계절, 회사 생활로 모은 돈을 쥐고 ‘새 꿈’을 찾아 떠나온 길엔 웃음꽃이 만발했다. 그는 이곳에서 스킨스쿠버 다이빙 강사가 되고자 했다.




한씨와 가족의 설명을 종합하면, 관광지로 알려진 로아탄섬의 한 ‘다이빙숍’에서 한씨는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시작한다.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를 이중국적으로 하는 30대 남성 대니얼 로스가 강사였다.
그해 8월23일 이른 아침, 다이빙숍 근처의 한 주택에서 마리스카가 벌거벗은 채로 돌연사한다. 대니얼의 방 침대 위였다. 대니얼과 한씨가 그의 곁에 있었다.


한 문장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이 풍경은 두고두고 한씨의 삶을 옥죄고 할퀸다. 한씨는 대니얼의 방 2개짜리 집에 세들어 살았다. “8월 초 여성 룸메이트들이 과정을 마치고 돌아갔다”며 “마침 댄(대니얼의 준말)이 사는 집에 빈방이 있어, 돈을 아끼려고 이사했다”고 그는 말한다.


마리스카는 대니얼의 또 다른 수강생었다. 전날 한 바에서 대니얼과 술을 마셨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이튿날 아침 6시께 침대 위에 변을 본 채, 숨을 헐떡이게 된다. 대니얼은 심폐소생술을 했고, 한씨는 대니얼의 부탁을 받고 이웃의 도움을 청했다. 병원으로 옮겨진 마리스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한씨는 어둑새벽 대니얼의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지 못한다.


온두라스 사법당국은 대니얼과 한씨를 마리스카 살해 공범으로 본다. 한씨는 “검찰은 댄과 제가 삼각관계이고, 애정 문제로 인한 살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며 “댄은 불과 하루이틀 전 다른 여자를 데려온 적도 있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로아탄 경찰은 당시 대니얼을 체포•수감했다. 한씨는 법정 증언을 했다. 한씨는 “대니얼이 영국 국적의 여권을 압수당한 채 보석으로 풀려났다”고 말한다. 대니얼은 곧장 오스트레일리아 국적 여권으로 온두라스를 떠난다. 부검 조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가족이 직접 소재 파악, 이집트는 대놓고 무시
한씨는 경찰 조사를 받으며 강사 자격증을 땄고, 그해 9월 말 무리 없이 온두라스를 떠났다. 이집트에 다이빙 강사직을 구해 6개월가량 일했다. 그러다 출국하려던 올 8월27일, 카이로 공항에서 붙잡혀 구금까지 됐다. 9월22일엔 온두라스로 전격 송환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씨가 ‘무국적자’나 별 다름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주이집트 한국대사관 등 우리 외교당국은 이집트 경찰에 한씨가 체포•수감된 사실조차 파악 못했다. 한씨 가족은 연락이 끊기자, 주이집트 대사관 쪽에 문의했다고 한다. 한씨가 체포된 날이다. 심지어 법원에 강제 출석해 아랍어로 된, 알 수 없는 진술서에 서명까지 한 날이다.


한씨의 소재는 가족이 직접 파악했다. 수감자가 한씨의 부탁을 들어, 전화해준 덕분이다. 체포되고 일주일이 다 되어서다. 9월2일, 가족은 대사관에 연락해 ‘신병 확인’을 요청했고, 영사는 이튿날 한씨를 면회한다. ‘조국’과의 첫 대면이었다.


이집트 당국에 더 악질적 문제가 있다. 영사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이하 비엔나영사협약)을 보면 “파견국의 국민이 체포•구금•구속되는 경우에 그 국민이 파견국의 영사기관에 통보할 것을 요청하면 접수국은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른바 ‘영사 통지권’이다. 요청시라고 전제했으나, 요청 없이도 통보하는 게 관례다. 또한 체포•구금 때 “영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영사 조력권’을 반드시 개인에게 고지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비엔나영사협약에 규정된 재외국민 보호•관리 장치로서 ‘영사적 보호’라 이른다.


하지만 이집트 당국은 대놓고 무시했다. 체포된 한씨는 인터폴로 송치돼 “당장 온두라스에 갈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 추궁당하자 영사 면회를 요청했다. 거절당했다. 수갑을 찬 채 법정으로 이동했고, 수차례 영사 접촉을 요구했지만 모두 거절됐다. 전화 사용도 금지당했다. 소지품을 압수수색당하며 돈은 물론 소지품도 분실했다. 이집트 유치장에 갇힌 첫날 그는 “차가운 돌바닥에서 잠을 자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목이 돌아가 있는 걸 발견하고 울면서 목을 돌렸다”.


그가 경독과 공포로 울 때도 대한민국 헌법은 말하고 있었다. “국가는 법률이 정한 바에 의하여 자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갖는다.”(2조2항) 이에 근거해, 타국의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해 자국민을 대신해 국가가 개입하는 ‘외교적 보호’는 국가의 권리이자 의무다.
하지만 조국의 외교당국은 ‘관대’했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 담당자는 “(이집트에) 항의했지만, (체포•수감 등에 대한) 통보 필요성을 못 느꼈다는 해명을 들었을 뿐 사과는 받지 못했다”며 “다음부턴 통보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한다. 끝이다. 가장 중요한 영사 통지권 및 조력권 통보가 짓밟혔고, 그로 인해 영사의 개입이 늦어졌으며, 그 때문에 위법적 처우가 가능했다.
사후에만 분주한 대사관
물론 주권국의 법까지 침해하긴 어렵다. 후진국에서 감수해야 할 위험도 따른다. 하지만 이집트는 더 후진적이라 평가받는 온두라스와의 국제 수사 공조에는 철저했다.


인터폴 적색수배령에 따라 타국인을 직접 체포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나라 간 조약을 맺은 유럽 일부 국가 등에 국한된다. 경찰청 외사과 담당자는 “우리나라도 적색수배자가 출입국할 경우, 해당 사법당국과 연락해 조처를 논의하지만 대체로 체포하기보다는 강제 출국시키는 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당시 한씨가 체포•송환되는 과정에서 경찰청 쪽은 “이집트가 그리 하도록 명시한 자국법이나 온두라스와의 조약이 있는지 따져 강력히 항의할 것을 외교당국에 주문했다”고 말한다. 외통부는 “양국이 조약을 맺은 건 아니지만, 이집트 쪽이 경찰 공조 차원에서 응한 것”이라며 “체포 여부는 해당 국가가 판단할 사항이고, 제3국 인도도 정당한 주권 행사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보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한다. 노력도 물론 있었다. 대사관은 이집트 검찰청, 외교부 영사담당 부차관보 등을 면담하며 한씨의 이송 연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허사였다.


온두라스에 송환된 뒤 절망은 더 커진다. 한씨는 지난 9월 말까지 로아탄 법원에서 1•2차 심리를 마치고 유죄 추정 상태로 1심 재판에 회부된 상태다. 1차 심리는 피의자의 인적 사항, 피의 사실 등을 확인하는 절차고, 2차 심리는 우리의 구속적부심에 해당한다. 주온두라스 대사관은 “2차 심리는 기소를 공식화한 절차였다”고 설명한다. 이후 한씨가 유치장에서 교도소로 이감된 까닭이다.
3차 심리는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2차 심리 종료 뒤 60일 안에 이뤄진다. 3차 심리가 끝나고 실제 법리 다툼을 할 수 있는 1심 재판이 열린다. 이 사이에도 60일의 유예가 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지 못하면, 앞으로 4개월은 옥을 벗어날 수 없다. 한국대사관은 “주재국의 재판 수요, 느린 업무 관행 등을 감안했을 때 실제 재판은 더 지연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한씨는 불구속 재판을 요청하는 ‘구속변경심리’를 따로 신청할 수 있다. 대사관은 “그 경우, 선처를 요청하는 서한을 담당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검찰이 정식 기소하기 전, 한씨 가족은 가택연금 상태에서 검찰 수사를 받을 수 있도록 신원보증을 정부에 요청한 바 있다. 정부는 거부했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 담당자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공관이 한씨 신병을 확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씨가 도주하지 않는다는 보증을 제공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한씨 가족이 대사관을 통해 들은 얘기는 “안 좋은 선례가 될 수 있어 안 된다”는 말이었다.


대단히 구체적인 선진국의 자국민 보호 지침
현재 한씨는 변호사를 다시 선임하려고 한다. 2차 심리를 절망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1만5천달러가 사라졌다. 대사관이 선임해준 그 변호사는 1차 심리 땐 배석도 못했다. 쿠데타로 공항이 폐쇄되면서 로하탄 섬으로 오는 항공편이 끊겨 변호사는 물론 영사 얼굴도 보지 못한 채 1차 심리를 혼자 감당했다. 또 엎친 데 덮친 격. 대사관은 “심리 연기를 요청했고, 이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고 말한다. 줄곧 사후에만 우리 대사관은 분주했다.


해외 선진국의 자국민 보호 수준은 한국이 쳐다보기도 어렵다. <국제법상 재외 자국민의 보호에 관한 연구>(이진규•2008)를 보면 관련법은 물론 업무지침도 대단히 구체적이다. 스웨덴은 영사 지원 상황으로 △해외에서의 곤경을 여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경우 △외국 법원 등의 결정에 따라 자유가 구속됐을 경우 조사•재판•통역 등에 소요되는 비용까지 포함한다.


주한 미국대사관 영사들은 3개월에 1회씩 한국 교도소에 수감된 미국인 수형자들을 정기 방문한다. 면담 통역을 위해 한국인 직원도 대동한다.
우리나라는 △체포•구금 사실을 통보받은 경우, 재외국민과의 접촉을 통해 신원•혐의 내용 파악 △신속•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협조해줄 것을 주재국에 요청 △해당 재외국민 요청시 주재국 사법제도에 대한 일반적 정보 제공, 변호사 선임 절차 조언 △재판 상황 지속적 파악, 필요시 재판 방청 △복역 중 인권침해 여부 확인 및 시정 요구 등을 규정한다.


한씨 가족은 “정부의 도움이 부족하다”고 말하고, 외교당국은 “최선을 다한다”고 말한다. 이 간극은 선진국의 지침이 명징하고 실질적 보호를 적시한 반면, 한국은 비엔나영사협약에 이미 담긴 규정에 의거해 당위적 지침을 주되게 다룬다는 차이에서 노정되기도 한다.


실제 숨진 마리스카의 나라, 네덜란드만 봐도 대응은 상당히 다르다. 한씨가 이집트에서 온두라스로 송환되는 과정 대부분을 네덜란드 경찰이 동행했다. 한씨를 태운 비행기는 특이하게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경유하기도 했다. 그곳에 주온두라스 네덜란드 대사관 직원이 와 있었다.
그 나라 영사 지침을 보면 이렇다. △유럽 이외의 국가에 수감된 경우 월 30유로 수당 지급 △수감자에게 음식•의복•약품 구입비 또는 귀국항공권 구입비용 대출 △해당국의 적법 절차에 따라 소송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합리적 근거가 있을 경우 제2의 법적 검토를 위한 비용 지원.


대한민국 국민, 한씨가 수감된 라세이바 교도소는 2003년 내부 폭동으로 80명이 넘게 숨졌던 곳이다. 위태로운 정국 속 위험한 교도소에서 결백을 주장하는 한국인 여성 홀로 있다. 중형을 선고받은 3명의 여성 가결수와 한방을 쪼개 쓴다. 조리기구, 침대용품 등 모든 세간은 물론 음식까지 직접 조달해야 한다. 재력 있는 수형자는 에어컨, 텔레비전, 심지어 총까지 소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통상부는 “온두라스의 불안정한 정세와 열악한 구치소 환경 등을 감안해 한씨가 불구속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선처를 요청하는 등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예정”이라며 “1차 용의자인 대니얼의 신병 확보를 위해 적극적 조처를 취하고 있다”고 말한다. 주온두라스 대사관도 “현지 대법원장을 접촉해, 우리 정부의 우려사항과 요청사항을 전달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판결이 어떻게 날지 내다보기 어렵다. 외교당국이 선처를 요청하는 이유로 꼽는 온두라스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전망이 더 불가능한 악순환이 있다. 검찰은 한씨에게 30년 실형을 구형한 상태다.


징역 30년 구형, 절박한 시간이 가고 있다
주온두라스 대사관은 “정치적 교섭에 의해 석방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라며 “지금이라도 변호사를 고용해 과학적 자료와 증인을 확보해야만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은 재외국민에 대한 외교당국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꾸준히 시비가 일어왔다. 1998년 인도네시아 폭동 때 교민 대피를 소홀히 해 비난을 샀고, 2001년 9월과 2004년 5월 중국 내 한인 사형수에 대한 사전 통보를 받지 못하거나 구명에 실패하면서 논란을 겪었다. 2004년 김선일씨 피살 사건은 총체적 부실을 상징했다.


김석규 전 주일대사는 한 인터뷰에서 “문서수발과 자국민 보호는 외교관의 기본 업무”라며 “외교관들이 큰일만 하려고, 땀 흘리는 일은 기피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여러 재외국민은 ‘한국의 외교’를 비슷한 시각으로 본다. 2009년 8월말 현재 전세계적으로 1306명의 재외국민이 각종 혐의로 수감 중이다. 여기에 한지수씨가 새로 추가된다.


학계에선 영사적 보호를 사전예방적, 외교적 보호를 사후구제적 장치로 구분하기도 한다. 한씨의 경우, 영사적 보호의 시작이 늦었고, 이후의 조처는 줄곧 힘을 쓰지 못했다. 그리고 이젠 외교적 보호가 같은 절차를 밟을지 모른다.
온두라스는 이제 우기로 접어든다. 비가 잦아진다. 한지수씨만 이미 우기 복판에서 흠씬 젖어 있다.

가족•시민들의 구명 노력
교민은 면회하고 건설사는 합판 공수



» 한지수씨(사진 오른쪽)
        

한지수(26•사진 오른쪽)씨의 단란했던 가정은 폐가처럼 적막하다. 그의 아버지는 부동산업을 접고 9월 말부터 온두라스로 가 재판을 돕고, 어머니는 미국에서 국제앰네스티 등 의탁할 인권단체를 수소문 중이다. 어머니는 친정 부모에게 딸 이야기를 숨기느라 애를 먹었다. 쓰러질까 염려해서다.
언니 지희(27•회사원•왼쪽)씨는 구명운동을 하느라 네댓 시간 겨우 잔다. “낮밤이 사라졌다. 모두 낮이다.” 퇴근 뒤 온라인을 통해 구명운동을 펼치고, 새벽엔 아버지•동생과 연락을 한다.


가족은 외교당국에 대한 서운함이 많다. 그러나 내색하기를 주저한다. 여전히 국가의 조력이 절실한 까닭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손을 놓고 있지 않음을 안다. 주온두라스 대사관만도 두 달 동안 90회에 걸쳐 한씨네와 전자우편, 면담, 전화상담 등을 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한지희씨는 “가장 안타깝고 답답하게도, 그 나라 사법체계도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국가에 대한 만족도는 설명이 아닌, 체감인 것이다.


특히 더 조국이 아쉬운 건, 사망자의 나라인 네덜란드 때문이다. 최근 한씨가 등록했던 다이빙숍의 한 강사가 한씨의 억울함을 알리는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 네덜란드 대사관 쪽에서 찾아와 그 글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한지수씨의 설명이다. 마리스카 사망 1주년 프로그램이 자국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한씨 송환 과정에선 경찰이 직접 동행했다.


한지희씨는 “물적 증거는 없지만 정황상 네덜란드의 압박이 있다고 본다”며 “우리 정부는 타국의 사법 절차를 존중해야 한다며 공정성을 얘기하지만, 한쪽이 힘을 가할 때 다른 한쪽이 그만큼 가하지 않으면, 결국 불공정이 초래되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주온두라스 한국대사관은 “네덜란드 정부는 한씨가 재판에 회부된 이후에는 사법부와 접촉을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그 전에는 ‘접촉’했다는 뜻인지 알 수 없다.


다행히도 부족분은 국민이 메워주고 있다. 2차 심리가 불리하게 결론 나면서 한지희씨가 인터넷에 올린 구명 글이 삽시간에 호응을 얻은 덕분이다. 지금은 카페(cafe.daum.net/onlyforhan)가 만들어져 있다. 절절한 사연들이 이어진다. 교민들이 직접 한씨를 면회하고, 김치•라면 등 “1년을 (옥살이하며) 먹어도 충분할 음식”을 갖다주고, 현지에서 병원을 짓고 있는 ㅅ건설사는 감옥 안 침대에 꼭 필요한, 그러나 돈 주고도 구할 수 없던 합판을 공수해줬다.


누리꾼들 호응도 대단하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이미 청원이 돼 있고, 한씨의 사연을 네덜란드어•영어•프랑스어(마리스카의 아버지가 프랑스에 있음)로 번역해서 전파하겠다는 이도 있다. 그의 동문인 서강대•명덕외고 동기와 선후배들도 적극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가히 국제적이다.


외교통상부 재외국민보호과에서 이런 전화를 준 적이 있다고 한지희씨는 말한다. “우리 과 직원이 열 몇 명인데, 사실 온두라스에 가야 맞지만 직원 수가 적어 갈 순 없다.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다.” 희망이며 절망이다. 그 아쉬운 균형을 국경을 초월한 시민들이 깨주고 있다.



지난해 8월23일, 온두라스에서 네델란드인 여성 한 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여성이 사망한 숙소에는 외국인 남성 한 명과 한국인 여성 한 명(한지수)이 묵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건 발행 몇 달 후 한국 여성이 이집트에서 살해용의자로 체포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네델란드의 자국인 보호의식입니다.
애초 이 사건이 벌어졌을 때 네델란드 여성을 숙소로 데려온 외국인 남성(댄)이 강력한 용의자로 꼽혔습니다. 그러나 한 달 동안의 조사를 받고 그는 풀려났습니다.
그런데 재조사가 이뤄지고 인터폴에 수배가 되어 그날 같은 숙소에 있던 한국 여성까지 체포되게 됩니다.
이 과정을 보면 네델란드는 외교력을 발휘해서 이미 종결된 사건을 다시 수사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음 한국정부의 태도입니다.
지금 한지수씨와 그녀의 언니, 그리고 친구들은 인터넷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정부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하는데,
그 전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인터폴에 수배되었다면 출국 당시에도 기록이 나왔을텐데, 왜 자세히 조사를 안 했는지...
이집트에서 체포되어 온두라스로 압송되는 과정에는 무슨 역할을 했는지...


한국 정부만 믿고 있을 수 없는 사건인 것 같아 누리꾼 여러분의 도움을 호소합니다.
함께 사건의 개요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웠으면 합니다.
이미 한지수씨를 위한 인터넷카페가 마련되어 있고
한지수씨에 대한 아고라 청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서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관심있게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밑에 한지수씨가 직접 써서 보낸 사건 경과 올립니다.


온두라스에서 살인누명을 쓰고 업류되어 있는 한지수씨.


안녕하세요, 한지수입니다.

정말 많은 분들께서 도와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셔서, 몸은 갇혀있는 상태지만 마음은 펄펄 기운차게 날고 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사랑’이라는 걸 이렇게 배우는구나 생각이 듭니다.

이집트에 감금되었던 그 순간부터, 어리석은 제 자신을 용서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왜 신은 나를 이 세상에 보낸 것인지 의문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는 가족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모든 분들이 저의 가족입니다. 지금 진 이 빚은 제가 이 생에 다 갚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라도 갚겠습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저에게 ‘사랑’이라는 주제로 인생을 가르쳐주는 것 같습니다.

기운 내라고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 주소 스크랩 해서 주변 사람들께 알리시는 분들,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시는 분들, 격려 전화해주시는 분들, 문자 한 통 보내주시는 분들, 마음속으로 기도해주시는 분들, 이 글을 한번이라도 읽어주시는 분들 모두, 저에게는 진짜 천사입니다. 이번 일이 끝나면, 저도 한국에서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될 수 있는, 성실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꿋꿋하게 견디겠습니다. 이것이 설사 몇 십 년이 걸린다 하더라도, 건강한 신체와 성숙해진 정신으로 고국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굳은 마음 먹고 있습니다. 눈물이 나더라도 눈 부릅뜨고 꿀꺽 삼키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제 인생에서 저의 영혼이 이렇게 충만했을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제 영혼을 채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슴이 울컥 합니다. 더이상 쓰면 글을 쓰지 못하고 울어버릴 것 같아서 감사의 말씀은 한국에 돌아가서 하겠습니다.

언니가 올린 글이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있고 누락된 부분도 있어, 제가 다시 글을 올립니다. 여러 분들께서 의문을 주셨던 것에도 답변이 될 것입니다. (글을 조금이라도 짧게 하고자 단순 서술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말이 짧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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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물 관계

댄-나(한지수): 강사와 수강생. 나는 온두라스 로아탄 섬에 다이브마스터 및 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08년 6월 10일 입국하였고, 미리 연락한 다이빙 샾에 갔다. 다이빙 샾에는 7명의 강사가 있었고 댄은 그 중에 한 명이었다. 나는 샾에서 다이브마스터 과정을 밟으며 강사들(댄 포함)의 코스를 보조하였다. 난 원래 샾 근처에서 다른 다이브마스터 과정에 있던 여자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8월 초가 되자 그 룸메이트들이 모두 그 과정을 끝내고 출국하였다. 나는 강사 과정을 밟기 위해 8월 말까지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마침 댄이 사는 집에 빈 방이 있어, 돈을 아끼기 위해 댄이 사는 곳으로 이사하였다. (8월 15일)

댄-마리스카: 마리스카가 다이빙 코스를 밟을 때, 댄이 일부를 가르친 것으로 알고 있다.

나(한지수)-마리스카: 사건 전날 이전에는 만난 적이 없다. 강사 과정을 밟느라 샾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3. 08년 8월 22일 사건 전말

나는 다이빙 샾 근처에 있는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오후 10시-11시 경, 댄이 여자들 몇 명(마리스카 포함)과 바에 왔다. 그때 마리스카를 처음 보았고, 서로 통성명을 하였다. 바에는 사람이 많았고, 나는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술을 마셨다. 밤 12시-1시 경, 나는 바를 떠나 집으로 향하였고, 댄과 마리스카 역시 바를 떠나고 있음을 보았다. 당시 나는 취해있는 상태였고, 마리스카 및 댄도 퍽 취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약 15분 거리이다. 내가 집에 도착한지 거의 1분도 되지 않아 마리스카와 댄이 집에 왔다. 나는 방에 들어가 잠을 잤다.

한밤중에 자고 있는데 갑자기 우당 탕탕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깨었고, 소변도 마렵고 하여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맞은 편 방문에 댄이 서있었고, 방 사이에 위치한 화장실 문은 닫혀 있었다. 댄에게, “Is she here?” 라고 물으니 댄은 그렇다고 했고, 나는 방문에 기대어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약 1-2분) 화장실 문이 열리고, 문이 열리자마자 마리스카가 앞으로 쿵 쓰러졌다. 팔을 짚지도 않고 무릎을 꿇지도 않고 마치 통나무가 쓰러지듯 정면 낙하 하였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놀라서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댄이 마리스카에게 다가가 돌이켜 눕혔다. 눈썹 끝에 찢어진 듯한 상처가 나있었고, 출혈은 심하지 않았다. 댄은 나에게 얼음과 수건을 가져오라고 하고, 동시에 EFR(Emergency First Response-다이빙 관련 응급 구조 서적)책에서 얼마 동안 얼음을 대고 있어야 하는지 찾아보라고 하였다. 그리고 시간을 체크하라고 하였다. 그 때가 20분간 대고 있으면 된다고 책에 나와있었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정각이었다. 댄은 마리스카에게, 엄마의 이름이 무엇이냐 물어보았고, 마리스카는 대답하였다. 1부터 10까지 세어봐라 하니, 마리스카가, ‘Dutch or English?’라고 되물었다. 영어로 하라고 하자, 영어로 1부터 10까지 세었다. 마리스카는 I feel so stupid…라는 말을 되풀이 하였고, 우리는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는 입 쪽이 아픈 듯 입에 손을 갖다 대었다. 이빨이 약간 깨져있었다. 나는 다른 얼음 팩을 갖다 주었다. 벽에 기대어 앉아있던 그녀를 거실에 있는 소파로 옮기고 댄은 자신도 소파에 누운 뒤, TV를 켜고, 자신이 마리스카를 돌볼 테니 너는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 나는 알았다고 하고, 소변이 보고 싶어 화장실을 갔다. 변기에 변이 있는 것을 보고 물을 내리려고 하였으나, 물이 내려가지 않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줄이 끊어져 있어 줄을 연결하고 물을 내리고 소변을 보고 방에 들어가 다시 잤다.

아침 6시경, 댄이 나의 이름을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에 잠이 깼다. “지쑤! 지쑤!” 댄의 방으로 가보니 댄의 침대에 마리스카가 벌거벗은 채로 누워있었고, 변이 나온 상태였으며, 눈을 뜬 채로 숨을 헉-하고 들이쉬고 다시 헉-하고 들이쉬기를 늦은 템포로 반복하고 있었다. (지금 기억하기로는, 목 주변에 붉은색 점들이 보였다) 댄은 매우 당황한 듯한 표정과 목소리로 ‘난 이런걸 본적이 없다. 얘가 내 침대에 변을 보았다. 가서 도움을 청해라’고 외쳤다. 옆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고 대답이 없자, 아랫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렸다. 그 사이 위층에서 옆집 사람이 깨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나는 도움을 청했다. 아랫집에서 대답이 없어, 건너편 주유소로 갔다. 주유소에 있던 사람들에게 구급차를 불러달라고 했고, 그 중 몇 명과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댄은 방바닥에서 마리스카에게 CPR(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다. 댄과 옆집 남자가 마리스카를 들어 옆집 남자의 트럭으로 옮겼다. 트럭에는 매트리스가 놓여져 있었으며 나는 마리스카의 옷가지를 들고 댄과 함께 트럭 뒤에 탔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댄은 계속 CPR과 인공호흡을 하였고, 댄이 지치자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 병원에 도착하여 마리스카는 응급실로 옮겨지고, 댄은 어떤 방으로 들어가서 연락처를 주고 왔다고 하였다. 의사에게 이런 저런 것을 물었지만 영어가 통하지 않았다. 병원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여 밖으로 나갔고, 얼마간을 서성이다가, 집으로 향하였다. 집에 돌아오니 창문이 열려 있었고, 댄이 옆집 여자에게 청소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옆집 여자가 뭐라고 대답하였는데 나는 정확하게 듣지 못하였다. 댄이 청소를 하기 시작하여 나도 도왔다. 댄은 변이 묻은 이불을 씻었고, 나는 토사물이 담긴 냄비를 씻었다.

약 8시경, 다이빙 샾으로 함께 갔고, 다이빙 샾 매니저에게 사실을 알렸다. 다이빙 샾 매니저는 전화를 통해 (그가 걸었는지, 걸려온 것인지 알 수 없다) 마리스카의 사망 소식을 들었고, 그것을 댄에게 전달하였다. 얼마 후, 경찰이 댄을 데리러 왔다.


4. 사건 이후

댄은 구속되어 로아탄Roatan의 경찰서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었고, 나는 당일 날 경찰서에 가서 진술을 하였다. 26일, 나는 강사 시험을 보러 옆 섬(Utila)로 갔는데, 나의 Course Director-강사의 강사-가 댄의 변호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로아탄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였다. 어쩔 수 없이, 당일 날 전용 비행기를 타고 로아탄 섬으로 돌아와, 댄의 변호사를 만났다. 다음 날(27일) 법원에 가서 증인으로서 진술을 하였다. 나의 진술 이외에 변호사 측의 질문과 나의 답변의 다음과 같다.
  
1.     왜 청소를 하였는가?
마리스카가 죽은 지 모르는 상태였고, 방을 치우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2.     누가 청소를 하였는가?
옆집 여자가 청소를 하고 있었고 (당시 이렇게 대답하였는데, 그 이유는 댄이 옆집 여자에게 청소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판단한 것이었다) 댄과 내가 그것을 도왔다.

이후, 판결이 어떻게 났는지 직접적으로 듣지는 못하였고, 댄이 부검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한 달간 온두라스에 있어야 한다고 들었다. 댄이 풀려나 온 것을 보았으나 그 다음날(28일) 댄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이번 법정 증언으로 인해 강사 시험을 보지 못한 나는, 다음 달에 있을 강사 시험 때문에 한 달을 더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달 동안 계속 온두라스에 있었으나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하였다. 한번, 네덜란드 쪽 대리인이 찾아와서 댄의 행방을 물은 적이 있으나,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한 달 후, 강사시험을 치르고 출국하였다. (9월 말) 출국 시에도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미국에 약 3주간 머물렀다가 한국에서 약 2개월간 있다가 이집트에 다이빙 강사를 하러 12월 말에 출국하였다.


5. 이집트 구속 과정

08년 12월부터 이집트 다합에서 주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스쿠버 다이빙 강습을 하였다. 아무 문제없이 지내다가, 09년 8월 27일 출국을 하고자 카이로 공항에서 여권 심사대에서 기다리는데, 잠시 기다리라고 하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기다리다가, 공항에 있는 경찰대에 의해 어느 방으로 끌려갔고, 약 서너 시간 이후, 인터폴로 수송되어 Samir Saad 라는 Interpol Inspector를 만났다. 나의 여권 사진이 있는 사건 파일을 가지고 있었고, Daniel Ross와의 관계 및 사건 전말을 물었다. 댄과 나는 다이빙 샾의 강사와 수강생이었다고 대답하였고, 사건 전말을 설명하였다. 그 사람은 나에게 지금 당장 온두라스에 갈 준비가 되어 있냐고 물었다. 나는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지금 당장은 안되겠다고 대답하였고, 영사 연락을 요청하였으나 잠시 후에 다시 만날 때 해주겠다며 거절하였다.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었다) 이후, 법원으로 이동되었고, 이동 과정에서 경찰로 추정되는 사람과 수갑을 나누어 찼다. 법원에서는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남자 한 명과, 서기관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있었다.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남자가 사건 전말을 이야기 하라고 하였고, 나는 영어로 진술을 하고, 그 남자가 아랍어로 번역을 하고, 서기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아랍어로 받아 적었다. 진술이 끝나자 이런 저런 질문-댄과의 관계, 마리스카와의 관계 등-을 하였고 나는 이에 대답하였다. 질의응답이 끝나고 아랍어로 된 진술서에 서명을 하라고 하여, 서명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은 일이다) 이후 Takshibit이라는 감옥으로 수송되어 감금되었다. 누차 영사 접촉을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이후 감옥에 줄곧 있었고, 어떠한 전화 연락도 허락되지 않았다. 29일 법원을 재 방문하였으나, 이전에 들어갔던 방에 잠시 들어갔다 나왔을 뿐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감옥에 있은 지 닷새쯤 되는 날, 영어를 할 줄 아는 수감자가 들어왔고, 나의 사정을 설명하고 언니의 연락처를 주었다. 수감자가 자기가 곧 나가니, 나가게 되면 언니에게 전화해주겠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틀 후인 9월 3일, 감옥으로 누군가 찾아왔다고 하여 보니 주 이집트 대사관의 영사였다. 영사님의 도움으로 아버지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9월 10일 영사님께서 재 방문하시어 온두라스로의 송부가 거의 확정적이라고 말씀하셨고, 17일 날 다시 방문하시어 송부일자가 22일 새벽으로 확정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6. 송부 과정

21일 오후 6시경, 감옥에서 나와서 인터폴 본부로 이송되었다. 오후 10시경, 온두라스에서 온 인터폴 두 사람을 만났다. 한 명은 영어를 할 줄 알았고 한 명은 영어를 하지 못하였다. 오후 11시경,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이동 중 수갑을 차는 일은 없었다. 공항에서 영사님을 뵐 수 있었고, 영사님은 출국 때까지 함께 있었다.

현지시각 09년 9월 22일 오전 8시경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나오니 공항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폴 사람들이 주 온두라스 네덜란드 대사를 만난다고 하였다. 네덜란드 대사가 마침 네덜란드에 있어서 만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만날 필요가 없다고 하여, 공항에 있는 작은 방에 가두어졌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인터폴이 대사와 만나고 있었고, 그 동안 영어를 못하는 인터폴은 나와 함께 있었다. 정오 경에, 네덜란드 대사가 내가 있는 방으로 왔고, 인사를 나누었다. 대사는 나에게 아직 댄과 연락을 하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가끔 메신저로 연락할 수 있었다고 대답하였다. 대사는 인터폴에게 내가 한 이야기를 다시 강조하여 이야기 하였다. 대사는 파나마 시티에 도착하면 자신의 동료 Peter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인터폴에게 이야기 했다. 또한, 지금 온두라스의 정치 상황으로 인해 온두라스의 모든 공항이 정지 상태라고 말하였다.

파나마 시티에 도착하여 공항에서 Peter를 만났다. 워싱턴 DC에서 근무하고 있고, 네덜란드 대사관에 소속되어 있는 경찰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자신의 관할 지역은 Nicaragua부터 Canada 까지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원래 예정이었던 테구시갈파(온두라스 수도) 공항이 열리지 않아, 산 살바도르로 목적지가 변경되었다. 온두라스 인터폴 두 명, 네덜란드인 Peter 그리고 나 이렇게 네 사람이 된 일행은 산 살바도르로 향하는 비행 편에 올랐다.

산 살바도르에 도착하니 현지 인터폴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짐을 찾아서 나가려는데, 나의 짐이 분실되었다. 나의 짐은 개인 여행용 가방과, 감옥에서 쓸지 몰라 싸놓은 매트리스였다. 다른 사람의 짐은 모두 찾았으나, 나의 짐만 분실되었다. 산 살바도르의 인터폴이, 염려 말라며 자신이 찾아서 테구시갈파로 보내주겠다고 하였다. 당시 짐 표는 인터폴이 가지고 있었고 분실 신고 및 어떠한 서류도 작성하지 않았다. (현재로서 짐을 어떻게 찾을지도 막막한 상황이다) 그들은 호텔로 향하고, 나는 경찰서로 가서 경찰서 바닥에 그쪽에서 제공해준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잤다.

23일 오전 7시, 현지 인터폴의 차로 엘살바도르-온두라스 국경으로 향하였다. 온두라스에 도착하여 온두라스 인터폴의 차로 바꿔 탔으며, 온두라스의 공항이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일 로아탄 섬에 도착할 수 있도록 비행 편을 예약했다고 하여, 온두라스 영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동행하던 인터폴은 2시 30분 비행기라고 이야기 하며, 2시에 공항에서 보자고 하였다. 인터폴 사무소를 들를 것이라고 하였던 인터폴의 말과는 달리, 바로 테구시갈파 공항에 도착하였다. 약 2시경, 영사님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고, 그들은 나에게 빨리 탑승을 하라고 재촉하였다. 나는 영사님을 보고 가겠다고 버텼고, 결국 2시가 약간 지나 영사님께서 변호사와 함께 공항 로비에 도착하셨다. 변호사가 로아탄까지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으나, 비행기에 자리가 없어, 차일 오전 비행기로 올 것이라고 하였다.

오후 네 시경, 로아탄에 도착하자, 작년에 나를 찾아왔던 네덜란드 측 대리인, 현지 경찰 및 취재진 등이 공항에서 대기 중이었다. 경찰차로 Coxen Hole 경찰서로 이송되어왔고, 사무실에서 잠시 대기하였다. DGIC(온두라스 경찰의 종류로 추정)의 Sandra라고 하는 여성이, 자신이 인권 보호를 맡고 있다고 하였고 (작년에 Dan이 수감되었을 때에도 본적이 있음) 내가 독방을 쓰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자신이 힘써보겠다고 하였다. 컴퓨터 및 책상이 몇 대 있는 사무실에 매트리스를 놓고, 그 방에 머무르라고 하였다. 저녁 7시경, 검사 및 네덜란드인 (Peter와 대리인 Marco De Moor) 이 와서 판사를 보러 가자고 했다. 내가 왜 판사를 보러 가냐고 묻자, Peter는 “Just say hello”라고 대답하였다. 판사의 방에 도착하니, 판사가 지정한 변호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은 영어를 하지 못하여 네덜란드인Marco가 통역을 하여 주었다. 나는 아직까지 상황 판단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내일(24일) 1차 Hearing 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이건 그 전에 하는 절차인가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판사는 나에게 변호사가 언제 오냐고 물었고, 나는 내일 오는데 시간은 확실하지 않다고 대답하였다. 그들은 나에게 주소 및 부모 성명을 물은 후 절차를 진행하였다. 검사 및 변호사, 판사의 진술이 모두 끝나고, 나는 판사에게 내일 1차 Hearing 이 있냐고 물어보니, 그건 방금 끝났고, 28일 오후 1시 30분에 2차 Hearing 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그제서야 나는 방금 끝난 그것이 1차 Hearing 임을 알았다. 나는 속았다는 생각에 화가 났고, 판사 방에서 나와서 억울해하였다. 네덜란드인의 전화를 빌려서 영사님께 전화를 드렸다. 검사 중 한 명이 팔을 잡아 끌며 가자고 하자, 내가 팔을 놓으라고 강하게 말하였고, 그 때 옆에 있던 여 검사가 뭐라고 스페인어로 나에게 소리를 쳤다. 나는 영어로 말하라고 되받아 쳤다. 그 여 검사는 경찰서까지 와서 내 방으로 들어와 매트리스 및 담요를 빼내라고 하였다. 그날 차가운 타일 바닥에서 가방을 베개 삼아 잠을 잤다.


7. 2차 Hearing 2009년 9월 28일

# 검사 측 증인: 일반인 총 3명, 부검 전문의 1명

  1) 주유소에서 도와주러 온 남자: 세 명 중 제일 늦게 현장에 도착한 사람
증언: 지수가 도움을 청하러 주유소에 와서, 지수와 함께 집으로 갔다. 내가 도착했을 당시 이미 마리스카는 숨이 멈춰있는 상태였으며, 나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3~4시간이 경과한 상태였다. 집은 이미 청소된 상태였다.
변호사: 사망 후 3~4시간 경과를 주장하는 이유는?
증인: (마리스카의) 대변이 굳어있었고 손톱 색깔이 푸른색으로 변해있었기 때문이다.

2) 옆집 아줌마: 두 번째로 현장에 도착
증언: 집에 가 보았을 때, 댄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고 마리스카가 헉~ 하고 숨을 쉬었다. 대변의 상태는 유동성이 있는 상태였다

3) 옆집아저씨: 첫 번째로 현장에 도착
증언: 댄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었고, 매트리스를 가지고 내려갔다. 대변은 어두운 색이었다
  
(의사도 아닌 다이빙 강사인 첫 번째 증인의 증언은 전혀 신빙성이 없음. 청소가 되어있다고 주장한 것은 옆집아저씨가 와서 매트리스를 가지고 내려간 다음이었기 때문. 대변의 상태 역시 세 명의 진술 모두 제 각각임.)

4) 부검 검시관
증언: 목구멍에 피가 맺혀있고, 온몸에 멍이 있는 자국을 보아 이것은 타살(Homicide)이다.
검사: 한 사람이 한 일인가, 두 사람 이상이 가담한 일인가?
증언: 두 사람 이상이 한 일일 수 있다.
>> 검사 측 주장: 부검 결과가 타살로 나왔고, 두 사람 이상 가담했으니 현장에 있었던 한지수가 혐의가 있다.

# 변호 측 증인: 부검 전문의

  1) 작년에 작성된 1차 보고서와 이번에 작성된 2차 보고서의 사인이 다르다. 이건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어 재 부검하지 않는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첫 번째 부검보고서는 사망원인을 충격으로 인해 뇌가 부풀어서, 두 번째 부검보고서는 사망원인을 목이 졸려서 라고 되어 있는데, 는 해당 기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

  2) 외흔은 없고, 내부 출혈만 있는데, 목이 졸려 죽은 것만 사인으로 보는 것은 편파적이다. 목구멍 및 위 식도 모두 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할 수도 있다.

  3) 엠피타민이 검출되었는데, 그 함량은 표기되어있지 않다.

  4)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았다고 하는데 알코올이 검출되지 않았다.

>> 변호 측 주장: 위와 같은 이유로, 검사 측에서 제시한 부검 결과서 자체의 신빙성이 없다. 검사 측은 지금 (네덜란드의) 압력을 받아, 억지 증거를 잡아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지수는 당장 석방되어야 한다.

# 판결 (2009년 8월 29일)
변호 측에서 제기한 부검 결과서에 대한 논의는 실제 재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한지수는 다음 재판까지 구속처분을 내린다.

8. 판결 이후

28일 진행된 2차 Hearing은 판결이 나지 않은 채 Closing Argument까지만 하고 끝이 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변호 측은 웃고 있는 반면, 검사 측은 표정이 밝지 않았다. 나도 옆에서 통역을 통해 다 듣고 있었기에 우리 쪽이 우세함을 느꼈다. 아버지와 함께 웃으며 경찰소로 돌아와, 에피소드처럼 이야기를 했다. 다음 날 아침,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해보니, 변호사는 어두운 목소리로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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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차 Hearing에서 우세한 위치를 차지하고도, 석방이 불가하다는 판결을 받은 저와 아버지의 심정은 참담. 그 자체였습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모든 게 끝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짐까지 다 싸놓았던 저는 망연자실한 상태로, 멍하게 앉아있었습니다. 갑자기 무엇이 동기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불현듯, 이렇게 있으면 이 일이 정말로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니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 부당함을 알려야 한다. 이렇게 있으면 정말 당하고 만다. 여태까지 그렇게 당해왔다. 그렇게 언니의 노력이 시작되었고, 지금 이렇게 많은 분들께 알려 도움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더욱 확실히 해야 할 것은 잘 될 거야라는 맹목적 희망을 갖고 손을 놓기 보다는 잘 되게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는 30년 실형을 상상합니다. 넋놓고 있으면 어느 순간에 감옥에서 또 다른 옥중 편지를 쓰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 모릅니다. 지금 쓰는 이 편지가 마지막 편지가 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간절하게 부탁 드립니다. 부디, 관심을 가지고 계속 지켜봐 주십시오. 옆집 이웃인 것처럼, 아는 동생인 것처럼, 오랫동안 연락이 안되었던 친구인 것처럼 관심을 가져 주세요. 이렇게 만들어진 인연은, 제가 한국에 가면 갚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시판 한 줄로 끝나지 않고, 찾아 뵈어 밝고 건강한 웃는 모습 보여드리고 음료수라도 한잔 마시면서 감옥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해드리겠습니다.

꼭. 한국에서 뵙고 싶습니다……

온두라스 로아탄에서, 한지수 드림

더 도움을 주실 분들께서는

한지수씨 블로그 : http://generalhan.egloos.com/

한지수씨를 위한 카페 : http://cafe.daum.net/onlyforhan
한지수씨 언니 이메일 : han.jihi@gmail.com
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이요섭
NAUI #7418L

Workshop Dir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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